좋은지 나쁜지 판단이 안 됐다

두 번째로 망한 건 유튜브 콘텐츠 생성기였다. 이번엔 망한 이유가 달랐다.

계기는 이번에도 대표님이었다. 다른 분이다. 영상 쪽 일을 하시는 대표님인데, 본인이 쓰는 콘텐츠 생성기를 보여주셨다. 주제 잡고 기획하는 게 너무 편해졌다고 하셨다.

멋있어 보였다. 나도 해볼까. 우리 병원도 유튜브를 하니까, 만들어서 직원 줘볼까.

이 출발부터 이미 이상했다는 걸 그땐 몰랐다. 지금 보면 두 개가 겹쳐 있다. 동경으로 시작한 것(음성 요약과 같은 병), 그리고 내가 쓸 것도 아닌 걸 만들기 시작한 것.

만들다가 기획 단계부터 막혔다. 생성기라는 건 결국 규칙 덩어리다. 주제를 어디서 어떻게 찾을지, 어떤 형식으로 뽑을지, 뭐가 좋은 결과물인지를 미리 정해서 박아넣어야 한다. 근데 그건 콘텐츠 기획의 영역이고,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다.

어찌어찌 돌아가게는 만들었다. 결과물이 나왔다.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를 만났다.

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안 됐다.

진료였으면 바로 안다. 잘된 치료인지 아닌지 19년을 봐왔으니까. 근데 유튜브 기획안은? 이게 조회수가 나올 기획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. 결과물을 받아 들고도 통과인지 반려인지 정할 수 없는 사람이, 그걸 만드는 기계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.

그러다 현타가 왔다.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AI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, 이걸 왜 프로그램으로 만들지?

매일 반복되고, 규칙이 명확하고, 내가 결과를 판별할 수 있는 일. 그런 게 시스템으로 만들 일이다. 가끔 한 번 물어볼 일은 그냥 물어보면 된다.

정리하면 이렇다. 챗봇은 재료가 없어서 망했다. 이건 기준이 없어서 망했다. 내가 좋고 나쁨을 판별 못 하는 분야는, 만들어도 못 쓴다.

그 뒤로는 내가 아는 분야만 만든다. 병원 일. 그건 뭐가 좋은 건지 내가 제일 잘 아니까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