나를 AI로 끌어들인 그 기능을, 내 손으로 만들었다. 그리고 안 쓴다.
이 연재 첫머리에 쓴 얘기다. 미팅을 녹음하면 알아서 정리해주는 것. 아버지 세대의 대표님이 그걸 쓰시는 걸 보고 충격받아서 나는 이 판에 들어왔다.
한 달쯤 지나서,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났다. 나도 그거 만들 수 있지 않나? 이제 챗봇도 만들고 알림톡도 연동하는데. 시작점이었던 바로 그 기능을 내 손으로 재현해보고 싶었다.
만들었다. 녹음 파일을 넣으면 전사하고, 요약하고, 정리해주는 것. 잘 됐다. 완성이었다.
그리고 서랍에 들어갔다.
쓸 일이 없었다. 생각해보면 당연했다. 나는 미팅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아니다. 진료가 본업이고, 회의는 가끔이다. 대표님한테는 매일 쓰는 도구가, 나한테는 어쩌다 한 번 꺼낼까 말까 한 물건이었던 거다.
여기서 지금까지와 다른 종류의 실패를 알게 됐다.
챗봇은 재료가 없어서 망했다. 기술의 문제도, 필요의 문제도 아니었다. 근데 이건 완성까지 됐는데 안 쓴다. 필요해서 만든 게 아니라 동경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. 저 사람이 쓰는 게 멋있어서, 나도 갖고 싶어서.
돌아보니 구분이 명확했다. 필요해서 만든 것들은 전부 병원에 남아서 돌아가고 있었다. 주의사항, 알림톡, 문진표. 동경으로 만든 건 완성된 채로 서랍에 있었다.
대표님한테는 이 얘기 안 했다 ㅋㅋ 만들었다는 것도, 안 쓴다는 것도.
근데 이 물건,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. 나중에 전혀 생각 못 한 자리에서 살아 돌아온다. 그 얘기는 몇 편 뒤에 하겠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