종이 문진표를 서랍에 남겨뒀다

전환 전날, 종이 문진표를 서랍에 남겨뒀다 ㅋㅋ

전환 당일이었다. 문진표를 종이에서 시스템으로 완전히 바꾸는 날. 이날부터 접수는 QR로만 받는다.

걱정이 두 개였는데, 무게가 완전히 달랐다.

첫 번째 걱정. 환자들이 안 쓰면 어떡하지. QR 찍는 걸 낯설어하시면? 특히 어르신들. 이건 결과적으로 기우였다. 99%가 그냥 쓰셨다. 요즘은 어르신들도 폰으로 사진 찍고 카톡 하신다. QR도 자연스럽게 되더라. 못 쓰신 1%는 핸드폰 자체가 어려운 어르신 한 분이었고, 그런 분은 직원이 대신 입력해드리면 된다.

두 번째 걱정이 진짜였다. 시스템이 뻗으면.

이게 왜 무서운지는 앞 시스템들과 비교하면 명확하다. 주의사항이 뻗으면? 나중에 다시 보내드리면 된다. 알림톡이 뻗으면? 좀 이따 가면 된다. 아쉽지만 병원은 돌아간다. 근데 문진표가 뻗으면 접수가 멈춘다. 대기실에 환자가 서 있는데 받을 수가 없다. 그 순간 병원 전체가 선다.

같은 “시스템 오류”라도 위치에 따라 무게가 다르다. 주변부에서 터지는 것과 길목에서 터지는 것.

그래서 종이 문진표를 서랍에 남겨뒀다. 안 쓰기로 한 날에. 뻗으면 종이로라도 접수는 받아야 하니까. 혁신한다고 퇴로까지 태우지는 않는다.

당일, 오류는 없었다. 접수는 멈추지 않았다. 서랍의 종이는 꺼낼 일이 없었다.

대신 다른 게 왔다. 직원들이 말했다. “이랬으면 더 편하겠는데요.” “이건 좀 불편해요.”

불평이 아니었다. 개선 요청이었다. 이 차이가 크다. 불평은 “예전이 나았어”고, 개선 요청은 “이걸 더 좋게 만들자”다. 개선 요청이 나온다는 건, 직원들이 이 시스템을 이미 자기 물건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.

전환은 그렇게 끝났다. 걱정했던 건 안 왔고, 안 기다렸던 게 왔다.